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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메커니즘: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잊는가?

by 안단테드림 2025. 5. 22.


"기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오늘은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잊는지 기억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어릴 적 잊지 못할 소풍의 장면, 첫사랑의 미소, 혹은 오늘 아침에 먹은 아침 식사까지—우리의 삶은 수많은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기억은 평생 잊히지 않고 생생히 남아 있는 반면, 어떤 정보는 금세 사라지고 맙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어떻게 정보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떠올리고, 또 왜 잊어버리는 걸까요? 기억은 뇌의 가장 신비롭고도 정교한 기능 중 하나입니다. 이 글에서는 기억이 형성되고 유지되며, 때로는 사라지는 과정까지, 뇌과학적 시각에서 살펴보며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기억’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이해해보려 합니다.

 

기억의 메커니즘: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잊는가?
기억의 메커니즘: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잊는가?

1.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입력에서 저장까지


기억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뇌는 정보를 입력 → 저장 → 인출이라는 단계적 과정을 통해 기억을 형성하고 유지합니다. 이 복잡한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중심 기관은 바로 해마(Hippocampus)대뇌피질(Cerebral Cortex)입니다.

 

▍감각에서 시작되는 기억의 여정
우리가 정보를 처음 접하는 단계는 감각 기억(sensory memory)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말을 들었을 때, 눈앞의 풍경을 보았을 때,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해 정보를 뇌로 전달합니다. 이 감각 정보는 짧은 시간 동안 해마 근처의 감각 피질에 저장됩니다. 이 단계는 불과 1~2초만 지속되며, 대부분의 정보는 곧바로 소멸합니다. 그러나 이 정보가 주의를 끌고 반복된다면, 뇌는 이를 다음 단계로 넘깁니다. 바로 단기 기억(short-term memory)입니다. 단기 기억은 보통 7±2개 항목을 20~30초 정도 유지할 수 있으며, 이 역시 별다른 조치가 없으면 사라집니다.

 

▍해마의 역할: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다
단기 기억 중 중요하거나 반복된 정보는 장기 기억(long-term memory)으로 전환됩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해마입니다. 해마는 단기 기억을 구조화하여 대뇌피질에 분산 저장하는 ‘전달자’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얼굴, 목소리, 이름은 서로 다른 피질 영역에 저장되지만, 해마는 이를 하나의 기억으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해마는 기억의 ‘저장고’가 아니라 ‘경유지’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뇌는 해마를 통해 정보를 여러 영역에 퍼뜨리고, 이후에는 그 연결망을 통해 기억을 재구성하게 됩니다. 따라서 해마가 손상되면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게 되며, 이를 선행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라고 합니다.

 

▍수면과 기억: 잠자는 동안 기억은 강화된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뇌는 쉬지 않습니다. 특히 렘 수면(REM sleep)과 비렘 수면(Non-REM sleep) 단계에서는 기억을 정리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학습한 내용을 오래 기억하려면 충분한 수면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수면 부족이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로 이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 기억의 종류는 어떻게 나뉘는가: 의미, 절차, 감정의 기억들

 

기억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종류는 아닙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를 기억하고, 그에 따라 서로 다른 뇌 구조가 작동합니다. 뇌과학에서는 크게 선언적 기억(declarative memory)비선언적 기억(non-declarative memory)으로 기억을 구분합니다.

 

▍선언적 기억: '무엇'을 기억하는가
선언적 기억은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기억입니다. 이름, 장소, 사건, 숫자 등 ‘의식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정보들입니다. 이 안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화 기억(episodic memory):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기억. 예: 첫 여행, 졸업식.

의미 기억(semantic memory): 일반적인 지식과 사실에 대한 기억. 예: 서울은 한국의 수도다.

선언적 기억은 주로 해마와 전측두엽(anterotemporal lobe)의 작용에 의해 형성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일화 기억은 퇴화하는 반면, 의미 기억은 비교적 오래 유지됩니다.

 

▍비선언적 기억: '어떻게'를 기억하는가
비선언적 기억은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아도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억입니다. 자전거 타기, 악기 연주, 키보드 타자 같은 절차적 기억(procedural memory)이 대표적입니다. 이 기억은 소뇌(cerebellum)기저핵(basal ganglia)을 중심으로 형성되며, 매우 안정적이기 때문에 잘 잊히지 않습니다. 또한 조건화된 감정 반응도 비선언적 기억에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특정 노래를 들으면 옛 연인이 떠오르며 가슴이 뛴다거나, 병원 냄새만 맡아도 불안해지는 것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런 감정 기억에는 편도체(amygdala)가 깊이 관여합니다.

 

▍기억은 조각의 퍼즐이다
하나의 기억은 다양한 뇌 영역에 흩어져 저장되며, 그 기억을 ‘인출’할 때는 각기 다른 조각들을 재조립하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억이 왜곡되거나, 일부만 남거나, 다른 기억과 섞여 버리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를 기억의 재구성적 특성(reconstructive memory)이라고 합니다.

 

3. 우리는 왜 기억을 잊는가: 망각의 이유와 뇌의 전략


기억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정보를 금세 잊고,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흐릿해집니다. 그렇다면 뇌는 왜 기억을 잊도록 설계된 걸까요?

 

▍망각은 뇌의 효율성을 위한 선택
기억은 단순히 저장 용량의 문제가 아닙니다. 뇌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불필요한 정보는 걸러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망각은 오히려 인지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입니다. 불필요한 감각 정보, 반복되지 않는 정보, 감정적으로 무관한 정보는 쉽게 사라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제 몇 시에 컵라면을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기억 간섭 이론: 너무 많은 정보, 혼란스러운 기억
망각의 또 다른 원인은 기억 간섭(interference)입니다. 새로운 정보가 기존의 기억을 방해하거나, 기존 기억이 새로운 정보의 저장을 방해하는 현상입니다. 이를 각각 역행 간섭과 순행 간섭이라고 부릅니다.

예: 새로 바뀐 비밀번호가 도무지 외워지지 않고, 예전 비밀번호만 떠오른다면 이는 순행 간섭의 예입니다.

 

▍감정, 트라우마, 그리고 기억 억제
감정도 망각에 영향을 줍니다. 긍정적인 감정은 기억을 강화하는 반면,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기억은 억제(repression)되거나 왜곡될 수 있습니다. 이는 뇌가 정신적 안정을 위해 방어 기제를 작동시키는 방식입니다. 트라우마 환자들이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단편적으로만 기억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습니다. 최근에는 PTSD 환자의 뇌를 연구하여, 편도체와 해마의 상호작용이 강한 외상 기억을 만들어내는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기억을 마치 ‘서랍’에 넣는 것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뇌과학이 보여주는 기억의 세계는 훨씬 더 유기적이고 동적인 과정입니다. 기억은 감각, 감정, 시간, 반복, 주의력 등 다양한 요소의 상호작용 속에서 계속해서 재조합되고 변화합니다. 또한 기억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과 삶의 연속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나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무엇을 잊었는가에 따라 ‘나’라는 존재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 뇌과학은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기억력 향상, 치매 예방, 외상 치료, 학습법 개선 등 다양한 삶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기억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더 잘 이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